아무도 없는 거리의 나는, 가지각색의 스프레이를 꺼내 들고 벽에 그래피티 아트를 그리기 시작한다. 미래의 고양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광선총,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려넣는다. 많은 이들에겐 그저 낙서일 뿐이지만, 낙서조차도 하나의 예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규칙을 어겨도 괜찮아. 네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그 면들이 너의 삶의 일부가 될 때, 너의 등엔 아름다운 흰 날개가 자라날 거야. 지금도 너를 빛나게 해주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을 보며, 너의 감정을 마음에 담아 벽에 그려봐.
2022년 1월이 되었을 때 정한 나의 음악의 방향성은 이러했다. 장르에도 실적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해보자. 거기서 안맞는 것을 걸러내고, 더 좋아진 것을 잡고 2023년에 다시 나아가보자. 한마디로 2022년의 실적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2021년보단 성장이 더뎠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디딤돌을 만들고 발판을 만든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2022년 9월 30일 발매한 곡 Graffiti는 이러한 마음을 꽉꽉 눌러담아 만든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넣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담아 포장한 곡, 처음 써본 드럼 앤 베이스였고 처음 해보는 스타일이지만 2022년 통틀어 제일 재미있게 작업한 곡이라 자부할 수 있다.
조금 더 옛 이야기를 해보면, 2018년 처음 전자음악을 접하고 나서는, 덥스텝과 같은 강한 베이스 위주의 장르만 쓰고 싶었다. 후에 몇 년이 지나고는 멜로딕 덥스텝이나 하이브리드 트랩 같은 여러 장르들도 같이 연구를 했지만,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느끼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0년부터 나는 오픈마인드로 전자음악 안에서 모든 장르를 즐겨 듣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다양한 장르를 하나씩 도전해 보며 작곡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나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좋았다. 좋은데, 가끔은 내가 도대체 무슨 장르를 뭘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귀엽고 잔잔한 하우스를 쓰다가 귀를 찢을 듯한 덥스텝을 내놓으면 청취자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울테고, 플랫폼들의 알고리즘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장르에만 몰두하기에는 금방 질리는 나의 성격을 잘 알았고, 어떻게 중간을 유지할지가 항상 고민이었다.
그래서 2022년의 목표가 "아무거나, 마음껏 해보자." 였던 것 같다. 질리도록 이것저것 탐구하다보면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작업에 몰두했고, Graffiti를 발매한 시점으로 어느 정도 나의 취향을 찾은 것 같다.
"나, 이런 꽉찬 사운드 좋아하는구나. 이런 구성 좋아하는구나. 어느 정도 반복은 있지만 마치 배경음악의 성격을 띠는 듯한 반복에서 오는 안정감도 괜찮구나." 등등. 조금 더 내가 만드는 음악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곡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곡이다.
2:42 부근에서 피아노 솔로가 시작되는 파트도 그러했다. 구상 당시의 생각은, "음.. 이번 곡에도 이 쉬어가는 파트를 피아노로 채우기는 너무 단조로울 것 같은데, 피아노를 빼고 더 높은 대역의 소리로 채울까?" 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피아노가 너무 넣고 싶은걸, 속사포로 몰아치는 피아노가 딱이겠는걸...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피아노로 곡을 가득 채워 넣었다. 음악에 정답은 없다고, 듣기 좋은 게 그저 정답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가슴속에서 맴돌았다.
후에 앨범 커버의 레퍼런스 삼을 그림들을 찾다가 알았는데, 그래피티 아트는 불법이다 하더라, 음악을 쓰면서 불법은 없지만, 송폼, 사운드디자인 등에서의 일반적인 규칙들은 존재하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요즘 사운드와 구린 옛 사운드를 구분 짓는 기준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러한 것들을 깨고 내 귀에 듣기 좋은 것을 1순위로 다시금 곡을 쓰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무조건 규칙을 깨는 것만이 정답이라 말하는 건 아니다. 규칙을 깨는 것만이 정답이라 외치는 순간 규칙을 깨는 규칙에 갇히게 되는 것이니까. 그저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나의 길을 찾고 가능성을 열어준 고마운 곡이, 미래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마치 편지를 쓰듯 곡의 설명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 앨범 전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것이다.
너, 예전엔 이런 마음가짐으로 곡을 썼어. 너가 미래에 어떤 곡을 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이 글들이 너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해. 초심을 잃지 말고, 그렇다고 안주하지도 말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쉬어가. 네가 미래에도 하고 싶은 것들을 몽땅 하고 살 수 있도록, 지금의 나도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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