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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멀지 않은 과거에, 유퀴즈에 출연하신 김영하 소설가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여행지를 고를 때, 여기만큼은 죽어도 안 갈 것 같은 곳을 여러 개 적어두고, 그중에서 갈 곳을 골라보자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나 싶다. 익숙한 것을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늘 먹던 제육볶음? 아니면 신메뉴인 청양마요김밥?”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지만, 성장에는 “불편한 도전”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도전을 통해 실패한 경험도 많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내 넓어진 나의 세상의 시야를 보고 있으면, “나쁘지만은 않네”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 단계씩 성장하는데 있어 마주한 불편한 도전, 불..

2024.04.24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1장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단지 비관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고통으로 시작해서 고통으로 끝난다. 낯선 세상을 처음 느꼈을 때의 공포로 아기는 울고,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모두 죽게 된다. 행복이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상대를 행복하게 한다기보다 고통을 줄여주는 일이다. 배고픈 아이의 고통을 느껴 한 공기의 밥을 차려주는 엄마의 마음처럼. 딱 한 공기의 밥이면 충분하다. 너무 과해도 안 된다. 상대의 고통을 나누려다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2장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이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미..

2024.04.23

데미안

도입부부터 철학적인 주제, 평소엔 읽기 힘든 아름다운 문체 등은 날 몰입시키기에 이미 충분했다. 다소 어려운 주제일지라도 이런 책은 그 문장들을 읊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 주제마저 간단명료한 것을 담고 있어 내용 이해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밝은 면만 보고 자라온 주인공 샹클리에,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이면을 만난다. 이미 가까운 곳에 악이 판을 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세상은 아니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그 악에 발을 들였고, 본인이 악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샹클리에는 망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구원자가 등장한다. 막스 데미안은 샹클리에의 악을 깨끗하게 몰아내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샹클리에에게 있어 데미안은 악을 몰아낸 선이지만, ..

2024.02.01

Message from the Past (feat. Christian Hayward)

반짝이는 별, 아름다운 밤하늘, 소년은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철부지 꼬맹이였던 네가, 아직 내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네가, 저렇게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아직은 닿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진심을 담아, 또 마음을 담아 손을 흔들어 줄 뿐이다. 그리고 소년이 떠난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미 별들이 우리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너를 응원하고 또 응원해. 표현이 서툰 나라서 미안해. 부디 너의 하루에서는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으면 좋겠어. 나의 응원이 너의 동기가 되고, 너의 회상이 나의 행복이 되리라 믿고,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내. 네가 세상..

Softable 2024.01.28

시지프의 신화

우리는 부조리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미래의 나라는 환상을 그리며 오늘을 살기를 거부한다. 결국 나는 오늘을 살지만 오늘을 살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평생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알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무한한 고통을 느끼며 산다. 우리의 죽음이 그 부조리함과 환상을 깨트릴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이성이 이런 것들을 전부 통제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주제는 이성보단 감성의 비중이 높아 보인다. 결국 부조리라는 것도 나의 안에 있는 감정으로 인해 생겨나는 허상에 가까울 테니까. 나의 감정이 기반이 되어 나라는 세상의 땅이 되고 하늘이 되는 부조리는, 우리의 죽음까지도 함께한다. 하지만 나 자체가 부조리가 될..

2024.01.22

Coma (feat. Jui)

나 자신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여전히 거울 속 나는 위화감이 들었다. 나의 몸은 거울에 투명하게 비쳐 보이지만, 나의 마음엔 검은 노이즈만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하늘을 그렸다. 나의 앞길을 막던 나의 삶이 사라지고, 나는 날아올랐다. 그렇게 나와 나, 우리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코마 상태로 삶을 여행한다. 그 길목에 더 이상 거울은 필요치 않았다. 네가 무엇인지를 기억해 내. 유한한 삶 속 영원한 순간들을 떠올려. 그 기억을 가지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 넘어지고 다치고, 너의 존재가 통째로 부정당해도, 그 기억들과 함께라면 너는 나아갈 수 있어. 아니 나아갈 거야. 그것이 내가 정한 미래이고 나니까. 전곡인 Mirror에서 열심히 자아에 대한 탐색을 떠들어댔다. 나..

Softable 2024.01.10

이방인

초반부 주인공은 감성보단 이성을 조금 더 앞세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로 그가 이상한 인간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섣불렀으니까. 그러나 가면 갈수록 나와 주인공의 사이에 어떠한 벽이 세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자의란 없어 보였고, 선악의 유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세상에서, 주인공은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애초에 주인공에게는 모든 세상이 이방이었다. 삶이 이토록 허무하고 부조리하다면, 우리가 행하는 '삶'이라는 반항조차 작중에서 가볍게 짓밟힐 일이라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부조리와 싸우며 삶을 보내지만,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모두 세상의..

2024.01.08

꿀벌의 예언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 자신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대부분은 진심 어린 조언이나 로또 번호를 부를 테고, 미래의 나를 만난다면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아 질문 폭탄을 던지지 않을까. 베르나르의 작품들에서 죽음과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생의 덕이나 죄로 다음 생을 결정하는 재판을 다루는 “심판”과 저승길로 위험한 모험을 떠나는 “타나토노트" 등, 이러한 터무니없는 설정에 현실성이 없다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작가는 실제로 일어날법한 일들과 작가의 상상력을 잘 버무리고, 거기에 디테일한 설정을 잘 배치해 두었다. 내용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도, 흥미로운 설정과 디테일에 결국 몰입하게 되는 것..

2024.01.04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을 자주 접한 사람이라면 너무 친숙한 소재이다. 죽음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 일생동안 있었던 일을 심판받고 다시 환생할 나를 정하는 내용이다. 다만 특이하게도 책 전체가 연극 형식의 희곡인데, 실제 연극의 대본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무대가 그려졌다. 이 점이 누군가에겐 감점 요소일 수 있지만, 애초에 책을 읽으며 장면을 상상하며 읽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보너스였다.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심판받고 변호받는 내용, 신과함께가 떠오르는 내용이라 더욱 술술 읽혔다. '연극'스러운 내용과 더불어 꽤 참신한 마무리까지. 심판 내용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지만 그 자체로 즐거운 여정이었다. 죽음 후에도 다음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올곶게 이 생을 살아야 한다.. 라..

2023.12.28

로봇시대 살아남기

"언젠가 로봇이 우리 모두를, 모두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부분을 대체하고 말 거야.." 귀가 아프도록 듣던 말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급속도로 발전해 온 인공지능은 이젠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가파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낯설어하지만, 사실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있음을 이 책에서는 소개한다. 로봇이 없던 아주 먼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사회현상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이론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단 각각의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로봇이 작곡도 대신해 주는 마당에, 나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기간 발전해 가는 인공지능을 지켜보며 든 생각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지만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브랜딩. 그 과정에서 ..

202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