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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Softable 2024. 4. 24. 16:44

멀지 않은 과거에, 유퀴즈에 출연하신 김영하 소설가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여행지를 고를 때, 여기만큼은 죽어도 안 갈 것 같은 곳을 여러 개 적어두고, 그중에서 갈 곳을 골라보자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나 싶다.

 

익숙한 것을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늘 먹던 제육볶음? 아니면 신메뉴인 청양마요김밥?”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지만, 성장에는 “불편한 도전”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도전을 통해 실패한 경험도 많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내 넓어진 나의 세상의 시야를 보고 있으면, “나쁘지만은 않네”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 단계씩 성장하는데 있어 마주한 불편한 도전, 불편한 지식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지루할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들을 실제 저자의 에세이와 엮어 소개함으로써 전혀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된다.

 

시험에서 언제나 4번으로 찍던 학생이 보름씩이나 걸려 읽은 죄와 벌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고, 재수를 하며 기독교의 신약 성서를 통해 믿음을 얻으며,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신 대신 나 자신을 마주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후엔 철학을 통해 형이상학에서 벗어나고, 과학과 수학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순간. 그때가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하는 순간들.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 읽은 책, 친구 따라 우연히 배웠던 취미, 학점 채우기용으로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느낀 설렘 같은 것들 말이다. 나의 영혼을 관통하는 듯한 순간들이 대부분 사소한 도전과 변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나니,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윤곽이 서서히 잡혀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나를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단한 알 속에서 알을 깨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물론 편안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나의 표면에 금을 내고 싶다.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애송이가 보지 못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한 인문학적 지식이 이토록 삶과 깊게 연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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