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단지 비관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고통으로 시작해서 고통으로 끝난다. 낯선 세상을 처음 느꼈을 때의 공포로 아기는 울고,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모두 죽게 된다. 행복이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상대를 행복하게 한다기보다 고통을 줄여주는 일이다. 배고픈 아이의 고통을 느껴 한 공기의 밥을 차려주는 엄마의 마음처럼. 딱 한 공기의 밥이면 충분하다. 너무 과해도 안 된다. 상대의 고통을 나누려다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2장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이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만, 수없는 희생 끝에는 허무함만이 남을 뿐이다. 현재를 수단 삼아 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말고, 현재를 수단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많은 장해물들이 나의 오늘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고, 무상으로부터 외면하고 회피하도록 등떠민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의 작은 변화들을 인지해보는 것이다. 어제보다 날이 따듯해졌네, 오늘은 집 앞 초등학교가 쉬는 날인가보다, 같은 것들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는 것을 앎으로써,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을 있는 힘껏 즐기리라는 의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3장
몇년 전 처음 “무아”라는 단어를 접할 때는, 약간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나에게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내가 닿는 모든 연과 얽히고 얽혀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세상에 살아가는 듯한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모든 것에 자주적인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법무아를 뜻하는 말이다. 의자는 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높은 곳에 닿기 위해 밟고 올라갈 수 있고, 남자다움, 여자다움과 같은 생각들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언어적 틀에 갇혀 실체를 보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거나 찰나의 순간이거나, 둘 중 하나로 판단하고야 만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도, 찰나의 순간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떤 것의 본질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보던 중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나의 반려동물은 영원히 살지 못하지만, 살아있는 순간은 언제나 귀여움을 뽐낸다. 벚꽃은 일찍 져버리지만, 꽃이 핀 순간에 곧바로 지는 것은 아니다. 그 균형을 맞추며 세상과 나를 바라보고 느껴야, 그들이 뿜어내는 무상을, 그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4장
끝없는 갈망과 번뇌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핸드폰이 없어져 좌절하고 있는 나를 떠올려보자. 핸드폰이 “없다”라는 것은 핸드폰이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현재의 바탕이 되는 생각들로 머리를 비워내야 한다.
맑은 물과 거울, 둘다 나를 비추어 보여준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본다면 정확하고 자세하게 나를 직면할 수 있겠지만, 더러워지는 거울에 비친 나를 청결하게 만들고자 하는 강박에 휩싸인다. 이제 맑은 물을 통해 나를 봐보자. 물 안에서 요동치는 심경을 진정시키고 물을 진정시키자. 작은 나뭇잎이 떨어져도, 바람이 조금만 물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물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나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물론 내면에서 오는 자극도 마찬가지다.
나를 반응하게 만드는 외/내부의 모든 것에 집중하자. 성공에서 오는 환희도, 실패에서 오는 회한도 변화하는 나를 더욱 자세히 비추어주는 매게채가 될 것이니까.
5장
인연은 “인”과 “연”으로 구분지어 해석할 수 있다. 연결된 관계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인과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연.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성장하는데 직접적인 인 부모고, 그 외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부가적인 연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에 너무 치중된 생각으로 나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너”라는 단어는 참 특별하다. 대체 가능한 집단 중 한 사람이 아닌, 내가 아는 너를 콕 찝어 이야기할 수 있다. 파란색을 좋아하고 벌레를 싫어하는 너. 키가 172cm에 검은 바지를 즐겨 입는 너. 내가 너를 “너”라고 칭함으로써 너는 존재하고, 나 또한 그렇게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나는 무수히 많은 “너”들로 인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마치 포도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가 되듯이 말이다. 그 작고 소중한 연들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이토록 연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연도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과거 받은 상처로 인해 새 연을 두려워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연이 좋은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연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연이란 사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음식,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고 나와 연결된 연이다. 그런 것들을 내가 알고 있는 이상, 새 연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나에게 맞지 않은 연이라면, 키를 돌려 방향을 틀면 될테니까.
6장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
삶의 주인으로써 행동하는 것. 우리는 그걸 자유라고 부른다.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하는 자유가 아닌, 멈출 수 있고 “노”라고 외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경사진 길을 굴러떨어지는 것을 자유라고 부르진 않는다. 구르는 도중 나무든 뭐든 잡아 멈추는 것이 자유이지.
많은 이들이 자발적 노예가 되어 남의 인생을 주인삼아 살아간다. 직장에 나의 능력을 어필하여 주인을 위해 일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일도 마다하지 못한다. 그런 삶은 현재가 없는 삶일 뿐이다.
라고 멋드러지게 말을 적어봤자,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잘 안다.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느껴야 하는 감정들이 얼마나 버거운지도 안다. 그래서 책에서 설명하는 자발적 노예로 구사한 사람들을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오만한 일반화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지나간 삶을 비판하기보다, 이제부터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생계를 적당히 유지하며 내가 나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것. 현재를 즐기며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것. 나는 나를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나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낀다.
7장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말로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토로하는 사람보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하나 줍는 사람이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아낀다”는 표현이 들어가있기도 하다. 돈을 아끼듯이, 사용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상대가 느낄 불편함을 대신 감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행동으로 변하지 않으면, 사랑은 그저 말이나 관념적 틀에 갇혀 있게 된다.
자기희생적 행동을 통한 사랑의 증명, 이 또한 악용되기 쉬운 요즘 세상에 쉽지 않은 일음은 알지만, 제일 가까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사랑과 아낌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겠다.
8장
내가 만약 죽음을 직면할 때, 내가 아직 죽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들을 떠올려보자. 거북이도 있고, 소중한 친구들도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편안한 죽음의 세계보다 고통스러운 삶의 세계에 내가 남아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우리는 그걸 사랑하고 아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자기희생이 사랑의 증명이라 앞서 언급했지만, 사실 중도의 길을 걷는게 중요해 보인다. 너와 내가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는 것. 서로가 서로를 위한 희생만이 마이너스의 결과가 되지 않는다. 티내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상대의 눈을 쳐다보아야 한다. 상대의 망막에 맺힌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
물망물조장, 무언가를 잊지 말되 집착하지도 말아야 한다. 한 농부가 있다. 농부는 벼가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벼를 살살 뽑아낸다. 선한 마음으로 행한 일이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반대로 벼를 무시하며 보내도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당연히 중요한 사람이겠지만, 나또 한 한 공기의 연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으로 나를 파먹지도, 나의 욕심으로 상대를 갉아먹지도 말아야한다.
인정하기엔 마음아픈 일이지만, 나도 나이가 들며 세상을 계산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시간을 뻇는 것들을 내 주변에서 제외시키고, 성공만을 위해 달리기도 했다. 내가 진정 바란 삶은 그런 것이 아닌데. 돈과 성공은 전부 수단일 뿐임을 머릿속으로 끝없이 상기시켰겄만, 사랑을 행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배웠으니,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책을 읽는 동안이 아무 소용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