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일상

길었던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Softable 2023. 5. 22. 00:49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은 참 인상 깊었다. 늘 그렇듯 귀찮아져 마지막날의 기록은 적지 않았고, 그래도 기록인데 나중에 아쉽진 않을까.. 싶긴 하다. 그래도 지금 적긴 귀찮다. 나는 금요일 한국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다. 돌아오자마자 수위가 줄어든 거북씨의 수조에 물을 채워주는 것을 시작으로 일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온 것 같았다. 일주일 가량 컴퓨터와 작업과 게임과도 단절되어 살아본 적이 손에 꼽는데, 내 방과 마우스를 잡는 내 손이 낯설더라. 돌아온 다음날인 토요일까지도 나는 아직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야할 일은 금방 내 앞에 닥쳐왔고, 나는 도피하듯 카드게임에 몰두했다. 오늘까지도. 내일이 당장 월요일인데!! 멍하니 늘 오르는 탑을 오르고 심장을 잡았다. 예약주문해 받은 젤다 신작도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젤다만큼은 바쁜 다음 주 일정까지만 끝내고 몰입하며 달리고 싶었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내 옆엔 공부할 책이 펴져있고, 난 누워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배덕감이다..

 

그래서.. 나름 길고 멋진 여행이었는데, 뭘 느끼고 배웠냐고 물으면, 참 말하고 싶은 게 많다.

 

첫번째로 여행 자체에 거부감이 줄었다는 것.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엄청난 깨달음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돈도 나가고, 할 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 같았다. 막상 가면 또 무쟈게 잘 놀지만,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고 있는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창하게 멀리 나가지 않고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자부했지만, 잘 되진 못했다. 쉬지도 일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하루들이 지속되며 나는 망가지려 하고 있었고(다행히 망가지진 않았다.) 이 여행이 아슬하게 나를 잡아준 모양이다. 분기마다 한 번씩은 홀로 혹은 친구와 멀리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이 여행이, 내가 얼마나 내 일을 좋아하는지 상기시켜주었다. 여행에는 일부러 헤드폰과 에어팟을 챙기지 않았다. 그냥 자연이 주는 소리를 받고, 친구가 보는 쇼츠의 웃긴 대사를 흘려듣고, 이해 안 되는 일본어를 알아듣기 위해 추리하고. 돌아와서는 곡이 너무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를 켜 셔플재생을 했다. 그냥 랜덤하게 나온 늘 듣던 노래가, 이렇게 좋았나 싶었다. 아, 나도 곡을 쓰고 글을 쓰고 싶었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지. 

 

말하고 싶은 거 많다면서 둘이 끝이긴 하다. 호호

 

나중에 기록하겠지만 돌아오기 전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다. 그리고 우린 자전거를 타고 비를 뚫어야 했다. 바람까지 심해 결국 우산을 접고 내달리던 나는, 춥고 차가웠지만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탄 적은 있었나..? 짜여진 관광 코스에서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산과 구름에 둘러싸여서, 비바람을 맞으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무섭고 추웠다. 나는 힘도 약해 뒤쳐질까 봐 페달을 더 힘겹게 밟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미친놈처럼 웃을 수 있었나.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나는 똑같이 살아간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을 할 테고 돈과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고 별 것 아닌 걸로 걱정하고 할 일도 많은데 몰래 게임도 한 판 할 것이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기 전 쓸데없는 근심걱정 가득한 머릿속은 비웠으니, 한결 가볍다. 

 

사실 가볍지 않다. 비를 엄청 맞아서 그런지 감기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