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도입부부터 철학적인 주제, 평소엔 읽기 힘든 아름다운 문체 등은 날 몰입시키기에 이미 충분했다. 다소 어려운 주제일지라도 이런 책은 그 문장들을 읊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 주제마저 간단명료한 것을 담고 있어 내용 이해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밝은 면만 보고 자라온 주인공 샹클리에,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이면을 만난다. 이미 가까운 곳에 악이 판을 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세상은 아니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그 악에 발을 들였고, 본인이 악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샹클리에는 망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구원자가 등장한다. 막스 데미안은 샹클리에의 악을 깨끗하게 몰아내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샹클리에에게 있어 데미안은 악을 몰아낸 선이지만, 처음엔 그도 선의 탈을 쓴 악일 수도 있다며 그를 의심한다. 케인과 아벨을 예시로 들며 그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데미안은 그를 꺼내준다. 사회가 정한 규범에 갇혀 있지 말라고. 무엇이든 의심하라고.
학교를 옮기며 데미안과는 멀어지고, 사춘기가 된 샹클리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다. 그런 그는 언제나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 자신이고 싶은 무언가, 무의식 속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그렸는데,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얼굴이 데미안임을 깨닫고 놀라고 만다. 그 후 데미안에게 몇 번이고 편지를 썼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고, 어느 날 의문의 쪽지만 한 통 받게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다른 학교로 전학가 깊은 고독과 향수에 빠진 그는 새로운 친구이자 스승을 만난다. 데미안과 비슷한 결을 가진 그와 함께 아브락사스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에서 나를 보는 것. 선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비범한 존재가 아니게 되는 순간 떠나가는 신. 우리가 회색분자가 되지 않고, 그 색이 어떠하든 간에 한 색깔의 길을 걸어간다면 아브락사스는 우리와 함께할 것임을 알았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중략하려고 한다. 나 자신이 되려고 했던 샹클리에도 결국 전쟁에 징집되어 큰 부상을 입게 되고, 마침내 데미안과, 그토록 바라고자 했던 나 자신과의 결합을 이루어 내며 이야기는 끝마치게 된다.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도입부에 다 설명이 되어 있다. 인생이란 나 자신에게 향하는 길. 세상이란 알을 깨고 나로 태어나기 위한 길. 애초에 데미안은 샹클리에가 만들어낸 본인의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어떠한 것이든 의심하라고. 당연한 것은 없고, 영원한 것은 더더욱 없으니, 어느 한 사상이나 규범, 규율 등에 소속되어 들어 눕는 순간 행복의 탈을 쓴 불행 속에 살게 될 것이라고. 세상은 우리에게 편안한 음악을 틀어주며 알을 깨길 포기하라 권고한다. 당연히 삶을 살며 그 안정이 행복하다 느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다. 신경질적이고 모순적인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 지금 그 과정은 음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아마도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를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길을 걷는 것만이 나를 무언가 채워준다. 결국 내가 나이고, 알은 이미 깨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