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초반부 주인공은 감성보단 이성을 조금 더 앞세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로 그가 이상한 인간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섣불렀으니까. 그러나 가면 갈수록 나와 주인공의 사이에 어떠한 벽이 세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자의란 없어 보였고, 선악의 유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세상에서, 주인공은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애초에 주인공에게는 모든 세상이 이방이었다.
삶이 이토록 허무하고 부조리하다면, 우리가 행하는 '삶'이라는 반항조차 작중에서 가볍게 짓밟힐 일이라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부조리와 싸우며 삶을 보내지만,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모두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거나, 순응하거나, 자신의 방향대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결국 알을 깨야 한다. 내면의 나를 깨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알을 깨기도 전에 이미 세상이란 거인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 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살았고 그들은 이미 죽었다. 그저 운의 차이일까? 종교적인 해석에서도 철학적인 해석에서도 이 부조리함을 해결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허망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엔 없다. 외부의 공격을 받아내고 버티고, 나 자신과 싸우고, 세상을 향해 반항의 고함을 질러야 한다. 그런 자신이 세상에선 이방인으로 분류될지 몰라도, 나 스스로가 동떨어진 이방인이 되진 않을 것이다.